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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영화로 보는 다문화, 그리고 인권

영화로 보는 다문화, 그리고 인권 | 글 하성태



바야흐로 다문화 시대다. 관과 기업이 다문화가정에 대한 교육과 지원에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에서 충분히 감지된다. 6월 30일부터 2주간 열렸던 ‘다문화 영화제’가 3회째임에도 새삼 주목을 받았던 이유도 작금의 이러한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가 이벤트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서는 생활 속에서 인권감수성을 높여가는 일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여름휴가엔 가족과 함께 대중영화를 통해 인권문제에 접근해보는 건 어떨까.



올봄, 조용하게 흥행몰이를 했던 <내 이름은 칸>은 다문화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꽤나 흥미로운 작품이다. 인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칸은 천재적인 지적 능력의 소유자지만 야스퍼거증후군(자폐증과 유사한 발달장애의 한 유형)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만이 있다”고 가르쳤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성인이 된 칸은 동생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건너간다. 여기서 칸은 아이를 가진 이혼녀 만디라에게 한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고, 만디라 또한 순수한 영혼의 칸에게 반해 이슬람교와 힌두교라는 종교의 차이를 극복한 채 결혼에 골인한다. 발리우드 영화(뭄바이와 할리우드의 합성어로 춤과 노래 등 뮤지컬적 요소가 반복되는 인도 영화)의 특징을 간직한 채 밝고 경쾌하게 흘러가던 이 영화가 관객에게 고민을 던져주는 지점은 만디라의 아이가 사고로 죽고부터다.

9・11테러 이후 미국 사회는 중동지역에서 건너 온 이민자들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같은 학교 백인아이들의 폭력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만디라의 아들은 이러한 분위기의 희생양이었다. 상처 받은 아내를 위해 칸은 미국 대통령을 만나러 여행길에 오른다. 언뜻 야스퍼거증후군을 가진 칸의 무모한 여정으로 보이지만, 이는 다분히 의도적이다. 칸이 인종의 용광로인 미국에서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으로 당선된 오바마를 만나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한다는 과정 자체가 타자에 대한 이해와 화합을 기초로 하는 다문화 사회의 정착에 대한 역설로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의 이야기가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면, <방가!방가!>를 추천한다.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 문제를 코미디이면서도 균형감 갖춘 시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주인공은 만년 청년백수 방태식. 그는 내세울 것 없는 학벌과 동남아시아 남성을 연상시키는 외모 덕에 서른이 넘도록 제대로 된 직장도 갖지 못했다. 위기에 내몰린 그는 급기야 이주노동자 방가로 위장(?), 의자 공장에 취직한다. 거기서 태식은 미혼모 베트남 여성을 만나 첫사랑에도 빠지고, 각국에서 온 노동자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정도 쌓아간다. 하지만 삶이란 기쁨을 맛보면 응당 시련이 찾아오는 법. 함께 노래자랑 대회에 나가고자 했던 동료들은 사측으로부터 해고의 위협을 받기도 하고, 급기야 강제추방 위기에 처한다. <방가!방가!>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태식이 변모해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이주노동자 100만 명 시대를 맞아 한국 사회가 그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올 2월 개봉한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만화가 강풀의 웹툰을 원작으로 노년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는 장르로 따진다면 전형적인 멜로드라마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독불장군 김만석 할아버지가 송이뿐 할머니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노인인권 또한 오롯이 그들의 관점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겠냐는 해답을 제시해준다.

액션영화가 필요하다면, 강동원・고수 주연의 <초능력자>를 추천한다. 이 영화는 꽤나 우회적으로 정상과 비정상, 우리와 타자를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장애를 입으면서 눈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능력을 가지게 된 초인은 결국 스스로 ‘왕따’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매력적인 악인으로 그려진 초인은 사실 ‘차이’로 인해 고통 받는 우리 사회 속 ‘타자’들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자녀들과 전쟁과 인권에 대해 논하고 싶다면, <작은 연못>을 권한다. 노근리 사건(6・25전쟁 당시 미군이 충북 영동군 노근리 주민들을 학살한 사건)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며칠 간 자행된 사건 그 자체를 형상화하며 전쟁의 참혹성을 가감 없이 고발한다. 전쟁을 겪지 못한 세대에게 전쟁이야말로 인권유린과 제노사이드(대량학살)가 만연하는 참상의 현장임을 일깨워주는 생생한 시청각 자료가 될 것이다. ★ 하성태 님은 <오마이스타> 기자로 일하고 있다.




* 출처 : 국가인권위원회 웹진 '인권' 2011년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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