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결혼이주여성 42% “가정 폭력 경험”… 상담소 찾아도 산 넘어 산

[현장을 가다, 이슈를 읽다] <3> 결혼이주여성, 평등한 가족으로 인정한다면



지난달 27일 충북 옥천군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인권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옥천군에는 현재 약 450명의 결혼이주여성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날 교육에 참가한 이들은 교육을 마친 후 여성가족부가 시행하는 가정폭력실태 조사에도 참여했다. 옥천=고영권 기자


“여자가 ‘집안일을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도적이라는 건, 그러니까 여자가 많이 해야 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네’라고 답하면 돼요.”

지난달 27일 오전 충북 옥천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 펜을 하나씩 잡고 골똘히 생각하는 10여명의 결혼이주여성들 옆에 직원들 네다섯 명이 쉬운 한국어로 설명을 하느라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내가 경제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는 문항을 두고 경제적인 결정이 무슨 의미인지를 한국어가 서툰 이주여성에게 설명하는 데 한국인 직원도 한참을 헤맸다. 여성가족부가 실시하는 가정폭력피해 실태조사를 맡아 진행 중인 충북폭력피해이주여성상담소의 홍유경 상담사는 “몇몇 외국어로 번역이 된 질문지도 있지만 정확한 조사를 위해서 문항별로 더 쉽게 설명을 해주고 싶은데 생각보다 힘들다”라며 진땀을 뺐다.


일일이 찾아다니며 조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날도 옥천에서 영동까지 들렸다가 사무실이 있는 청주로 다시 돌아가는 데 반나절이 넘게 걸렸다. 결혼이주여성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면 평소에도 충북 지역 어디라도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다닌다. 소장을 포함해 5명이 상담소에서 일하는데 전화 상담을 받을 대기 직원 최소 1명을 두고 현장을 찾아다니느라 늘 일손이 부족하다. 먼 거리를 이동하기 힘든 피상담자(이주여성)를 직접 만나러 가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상담소장은 물론 일반 상담사들의 개인 전화도 쉼 없이 울린다. 이혼을 준비하는 피상담자에게 그때그때 필요한 정보를 답해주기도 하고, 상담 건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기관(경찰, 병원 등)과 연락하는 일도 잦았다.



[저작권 한국일보]결혼이민자 현황_신동준 기자/2019-12-09(한국일보)


◇ 10년 새 2배로 늘어난 결혼이주여성


지난해부터 가정폭력 방지대책 등의 일환으로 추진된 폭력피해이주여성상담소는 올해 인천, 대구, 청주, 목포 등 4곳에서 문을 열었다. 결혼, 취업, 유학 등 여러 유형의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등의 피해 상담을 하는데, 최근 베트남 결혼이주여성 가정폭력 사건으로 여가부가 관련 실태조사를 실시하면서 일이 더 바빠졌다. 지난 7월 베트남에서 온 부인을 발로 걷어차는 남성의 영상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공분을 일으키자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의 심각성이 사회적으로 재조명됐고, 이에 따라 실태조사도 진행한 것이다.


국내 결혼이주여성은 그 수가 10년 새 2배로 늘어났을 정도로 빠르게 증가해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귀화자를 포함한 결혼이주여성 수는 2007년 약 12만110명에서 2017년 26만4,681명으로 늘었다. 결혼 비자(F-6)로 체류 중인 경우와 혼인 귀화자를 포함한 수다. 전체 이주민 가운데 결혼이민자의 비중은 10~12%인데, 그중 여성이 70~80%에 달한다.


이런 변화 속에 남편의 폭력으로 숨진 이주여성의 안타까운 소식은 끊임없이 들려온다. 앞서 7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2007년 이후 남편의 폭력 등으로 사망한 이주여성이 언론에 보도된 사례만 따져봐도 21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지난달에도 경기 양주시에서 결혼한 지 3개월 된 베트남인 아내가 남편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주여성 응답자 10명 중 4명(42.1%)이 ‘가정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언어적 학대(81.1%)나 한국식 생활방식 강요(41.3%), 폭력, 생활비 미지급 등이 주된 방식이었다. 외출에 제약을 받거나 신분증을 빼앗기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충북에서 결혼이주여성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하는 3년 차 상담사 강정은(가명)씨 는 “고부갈등에서 가정불화가 시작되고 가정폭력까지 이어지는 일이 많다”며 “(한국인 부부라면) 70~80년대에나 들어봤을 법한 사례들이다”고 전했다. 현장 상담사들은 결혼이주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성차별적인 시각으로 본다거나 ‘못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 등으로 취급하는 인식이 갈등의 씨앗이 된다고 봤다.



[저작권 한국일보]출신 국적별 현황_신동준 기자/2019-12-09(한국일보)


◇ 언어소통ㆍ체류지위 등 문제로 인권 사각지대 놓여


한국인 가족 내에서도 가정폭력은 발생하지만,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언어 소통이 어렵다 보니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 한국어 소통이 힘든 경우 마을 주민단체 등 지역사회로부터 고립되기 쉬워 폭력을 당하고도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기 어렵고, 상담소 같은 기관과 연결된 후에도 해결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디다.


옥천센터에서 만난 결혼이주여성들은 물론 상담소에 연락해 온 이들도 대부분 한국어가 능숙하지 못했다. 이날 실태조사 전 ‘인권 및 생활법률교육’을 받던 여성들은 체류지위나 아이의 양육 문제 등과 관련해 여러 질문을 쏟아냈지만, 강사의 정확한 이해와 답을 얻기까지는 수 차례 서로 의미가 맞는지 확인하는 문답을 거쳐야 했다. 그나마 해당 교육을 받고 설문조사에 응한 여성들은 가족이 센터 방문을 적극 지원해주는, 주변 상황이 좋은 편에 속한다. 아예 지역 센터나 기관 방문조차 어려운 이들도 많고, 입국 초반에는 한국어 수업을 듣다가 시간이 지나면 육아와 경제활동 등으로 바빠 오래 한국어 공부를 하진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현장 전문가들은 전했다.


공경배 옥천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은 “초기 적응을 잘해야 가정 안에서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데 그러려면 한국어가 제일 중요하다”며 “취직을 할 때도 한국어를 잘해야 더 나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이런 취지로 한국어 방문 교육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를 꺼려하는 가족들마저 있다. 정승희 충북 폭력피해이주여성담소장은 “상담사례 중에는 한국어를 배우면 ‘도망을 간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한국어를 못 배우게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전했다. 인권위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17.8%가 한국어 교육을 방해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주여성들이 가정폭력을 당하고도 제 목소리를 못 내는 데는 체류지위가 불안정한 탓도 크다. 청주 상담소 문을 두드린 사례들을 봐도 폭력을 못 이겨 이혼을 하면서 결국 미등록체류자가 되거나 위자료 한 푼 받지 못한 채 본국으로 쫓겨나다시피 돌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배우자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 체류지위를 얻을 수 있다는 조항은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 귀책사유를 입증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16년 한 해 동안에만 결혼이민 체류자격 소지자 중 1,433명이 미등록 체류자가 됐다.


2010년 한국에 온 A씨(당시 20세)는 내년이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처했다. 남편은 결혼 이후 한 번도 경제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생활비를 버는 것은 A씨의 몫이었다. 식당, 공장 등을 다니며 일했지만 8~9년을 그렇게 살다 보니 더는 버틸 수 없어 이혼을 요구했다. 문제는 이혼 후에 벌어졌다. 가정 유지가 어려웠던 이유가 남편의 불성실함에 있었는데도, 이를 증명하지 않으면 법무부는 더 이상 A씨의 비자를 연장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전 남편과 시아버지는 “우리 인연은 이미 끝난 게 아니냐”며 도움을 요청하는 A씨의 연락을 피하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가정폭력 경험 유무_신동준 기자/2019-12-09(한국일보)


◇“독립적인 인격으로 이해할 필요”


그나마 상담소까지 직접 찾아온 결혼이주여성은 여러 방식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늘 기대했던 결과를 얻는다고 장담할 순 없다. 체류지위 외에도 경제적 자립, 자녀 양육권과 양육비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야 하고, 각종 기관과 연계해 복합적인 상담을 진행하는 과정은 피상담자에 고통스럽기 마련이다. 이를 견디지 못하고 상담지원을 받던 도중 연락이 끊기는 경우도 있다. 이혼조차 포기해버린 것이다. 정 소장은 “1명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수 차례 본인 상담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인 상담에 의사, 변호사, 경찰, 고용노동청 담당자 등 여러 전문가 자문까지 필요하다 보니 문제 해결 과정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정부가 각종 지원 기관을 좀더 촘촘하게 연결해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겠다는 ‘결혼이주여성 인권보호 내실화 방안’을 발표한 것은 그나마 긍정적이다. 하지만 단순히 지원 기관을 연결해준다는 데 그치지 말고 피해 여성 개개인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중심으로 놓고 대책의 큰 틀을 바꿔가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일반 가정폭력 사건을 처리할 때 ‘피해자 보호’가 아닌 ‘건강한 가정유지’를 목적으로 보는 우리 법제도의 근간이 이주여성 가정폭력사건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폭력피해이주여성상담소는 다문화가족 관련 지원센터와 달리 피해 여성 개인을 보호하는 데 중점을 맞춘 정책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정승희 소장은 “가족주의 아래에서 결혼이민자를 바라보니 가정이 깨지지 않는 데 주목해 교육을 하고 상담을 하려는 경향이 여전히 있다”며 “독립된 인격체로 이주여성이 살아갈 수 있게 보호하면서 부부가 평등한 관계 속에 원활한 가정생활을 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원본기사 링크 :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12091122378341



결혼이주여성 10명 중 4명 가정폭력…반복되는 피해 왜?


등록 :2019-07-07 17:07



결혼이주여성들이 2011년 6월2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이주여성들의 추모제를 마친 뒤 희생자들의 영정과 가정폭력을 비판하는 손팻말을 들고 여성가족부로 행진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07년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 온 캄보디아 출신 쏙카(가명)는 결혼 생활 3년 차부터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다. 남편은 결혼 초부터 “밭에서 같이 일하려고 내가 돈 주고 너를 데려왔다”며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다 쏙카가 아이와 함께 캄보디아 친정에 다녀온 뒤부터 머리카락을 붙잡고 벽에 밀치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지는 등 폭력을 일삼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가 울면서 말리면 남편은 밖에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티브이(TV)를 크게 틀어놓고 쏙카를 때렸다.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봤자 돌아오는 건 “네가 참아야 한다”는 말뿐이었다. 쏙카는 한국에 온 지 10년이 다 되어갈 때쯤 남편을 설득해 국적 신청을 했다. 하지만 남편은 이후 쏙카가 쉼터로 몸을 피하자 경찰에 ‘부인이 가출했다’며 국적 신청을 취소해버렸다.


6일 전남 영암군에서 베트남 이주여성이 한국인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가운데, 국적 취득에 있어 한국인 배우자가 전적인 권력을 행사하도록 해둔 법 조항 등으로 인해 이주여성들이 배우자에게 종속되고, 이런 종속 관계가 가정폭력 피해를 더욱 키운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6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발표한 ‘결혼이주 여성 체류실태 결과발표 및 정책토론회’ 자료를 보면, 2017년 결혼이주 여성 920명을 조사한 결과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387명(42.1%)이 가정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가정폭력 피해 유형(복수응답)을 보면, 피해자 가운데 81.1%(314명)가 가정에서 심한 욕설을 듣는 등의 심리 언어적 학대에 시달렸고, 67.9%(263명)는 성행위를 강요받거나 성추행·강간 피해를 입는 등 성적인 학대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흉기로 위협당했다’는 응답도 19.9%(77명)나 됐다.


하지만 가정폭력 피해를 겪은 이주여성 가운데 ‘주변에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다’고 답한 경우는 30.7%(119명)에 그쳤다. 피해 여성 36.1%(140명)는 ‘주변에 알려지는 것이 창피해서’(35명),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몰라서’(29명), ‘아무 효과도 없을 것 같아서’(29명) 등의 이유로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결혼이주 여성들이 배우자에게 종속돼 가정폭력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원인으로 한국사회의 가부장적인 문화와 ‘신원보증’ 문제를 꼽았다. 강혜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공동대표는 “부부간 권력이 평등하지 않은 한국사회의 성차별 문제에 더해 국제결혼 커플의 경우 평균 10살 이상 나이 차이에 따른 위계가 발생하다 보니 한국인 남편이 외국에서 온 나이 어린 부인을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거나 ‘우리 집에 들여놨으니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식의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2011년 결혼이주 여성이 국내에서 체류 연장 허가를 받을 때, 한국인 배우자가 ‘위장결혼 방지’ 취지로 신원보증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할 것을 명시한 출입국관리법 시행규칙을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법무부에 표명했다. 이후 신원보증서 제출 규정은 폐지됐지만, 여전히 결혼이주 여성이 국적을 취득하기 전 한국에 체류하려면 혼인 관계 사실 등에 대한 한국인 남편의 ‘신원보증’이 필요하다. 한국인 배우자가 일방적으로 신원보증을 철회할 경우 이주여성은 체류가 어려워진다. 강 공동대표는 “결혼이주 여성이 한국에서 영주권·국적을 취득하려면 한국인 남편이 혼인 관계 유지 등에 대한 신원보증을 비롯해 제출서류 구비에 절대적인 협조를 해줘야 한다”며 “한국인 배우자가 외국인 배우자의 안전한 체류와 국적 취득에 있어 전적인 권력을 행사하도록 하는 관련 법령이 결정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명숙 대구이주여성쉼터 소장도 “결혼이주 여성들 가운데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부인이 국적을 획득하면 도망갈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한국인 남편이 고의로 국적 취득을 도와주지 않는 일이 적지 않다”며 “최소한 자녀가 초등학교 취학연령이 되면, 혼인의 진정성을 인정해 이주여성이 단독으로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가정폭력 피해를 당한 결혼이주 여성들이 전문적인 상담과 법률지원 등을 받을 수 있도록 올해 안에 전국 5개 지역에 이주여성 상담소를 설치해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대구에 전국 최초로 ‘대구 폭력피해이주여성상담소’가 문을 연 데 이어 충북과 인천에도 각각 이달 16일과 19일 상담소가 문을 열 예정이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00797.html#csidxb2f12bcf3fa1df4a9a6daa4ab9a300c



[결혼이주여성인권] ① 유엔 권고 흘려들은 한국 다문화 폭력 못 막았다


오수진 기자


"가해자 엄벌 정도로는 다문화 가정 성 불평등과 폭력 못 막아"

비자 발급·귀화때 남편 절대적 존재…이혼후 국내 체류하려면 재판해야

"가난한 나라 출신', '여성'이라는 차별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해야"


결혼 이주여성 가정폭력 지난해만 1,273건 (CG)

[연합뉴스TV 제공]

※편집자 주 = 최근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이 남편으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한 영상이 공개돼 국민적 공분을 샀습니다. 두 살배기 아들이 보는 앞에서 자행된 폭행이었습니다. 영상은 페이스북과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국내는 물론 이 여성의 고국으로까지 급속히 퍼졌습니다.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했습니다. 경찰청장과 장관, 국무총리가 사과했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 남편을 엄벌해달라는 국민청원까지 올라왔습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결혼이주여성들과 관련한 제도의 문제점, 피해 사례, 인터뷰 등을 3편에 걸쳐 짚어봅니다.


(서울=연합뉴스) 김종량 오수진 기자 = 지난해 12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국 정부의 인종 차별 방지 정책을 심의하고 폭력 피해 이주여성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태도에 우려를 표명했다.

'결혼과 자녀 출산'이라는 목적을 위해 국적, 문화, 언어가 다른 배우자를 거리낌없이 맞아들이는 대한민국에 국제사회가 경고장을 내민 것은 지난해가 처음은 아니다.

2015년에는 유엔 인종차별 보고관이 한국 방문 보고서를 내놓고 결혼이주여성의 체류 안정을 보장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지난 2011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 남성과 결혼한 외국인 여성의 국적 취득 요건과 관련한 차별 조항 폐지를 권고했다.

수차례의 권고에도 한국 내 결혼이주여성의 인권과 가정 내 성 평등은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잊을만하면 다문화 가정 폭력 사건이 터졌고 결국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을 한국인 배우자가 폭행하는 동영상이 전 세계에 퍼지며 '한국은 결혼이주여성을 이유 없이 때리는 나라'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게 됐다.

이주민 관련 단체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결혼이주여성의 안정적 체류권을 보장하고, 더 나아가 이들이 '가난한 나라 출신', '여성'이라는 차별에서 벗어나 한국에서의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폭력 가해자 엄벌 정도로는 반복되는 다문화 가정의 성 불평등과 폭력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가정폭력에 외국인 취급…이주여성들의 `눈물'(CG)

[연합뉴스TV 제공]

◇ 제한된 결혼이민자 교육…가부장제에 갇힌 이주여성 체류권


13일 관련 단체들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과 한국인 배우자는 혼인 과정에서 가정 내 성 평등, 인권 교육 등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다.

현재 법무부와 여성가족부는 건강한 다문화 가족 구성을 위해 각각 국제결혼 안내프로그램과 결혼이민자 현지 사전교육을 하고 있다.

그러나 법무부가 진행 중인 국제결혼 안내프로그램은 총 4시간이며 부부간 인권 존중, 갈등 해소 노력, 가정폭력 방지, 홍익인간 이념 등의 인권 교육은 1시간에 불과하다.

교육 대상자도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몽골 등 특정 7개국 출신의 배우자와 결혼하는 한국인으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 외국인 배우자의 국가 또는 제3국에서 유학, 파견 근무 등으로 45일 이상 체류하면서 교제한 경우 ▲ 국내에서 외국인 배우자가 91일 이상 합법체류하면서 초청자와 교제한 경우 ▲ 배우자의 임신, 출산 그밖에 인도적인 고려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프로그램 이수 대상에서 면제된다.

한국다문화가족·건강가정지원센터협회 김도율 회장은 "교육 대상자가 특정 국가 출신과 결혼하는 경우에 한정돼 있어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결혼이주여성들이 계속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여가부가 운영하는 결혼이민자 현지사전교육은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몽골 출신 이주여성만 들을 수 있으며 주로 한국 생활 적응과 한국 가정 내 여성의 역할을 설명하는 데 그친다.

한국에 정착한 결혼이주여성의 결혼이민비자 발급이 한국인 배우자, 자녀, 배우자의 가족 등 가부장제 구성 요소에 종속된 것도 문제다.

국내 결혼이민(F-6) 비자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이들 유형의 비자 발급은 ▲ 우리 국민과 결혼생활을 지속하거나 ▲ 미성년 자녀를 국내에서 양육하거나 ▲ 한국인 배우자 사망·실종 등으로 혼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때로 조건을 달고 있다.

지난해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이런 국내 결혼이민비자 제도가 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며 결혼이민자의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체류가 안정화돼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이혼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1년 가까이 걸리는 결혼 귀화 심사…국내 체류하려면 재판 이혼해야

이주여성들은 결혼 귀화 심사 기간이 지나치게 길다고 호소한다.

실제 결혼 귀화는 혼인 관계 유지, 미성년 자녀 양육, 신청일 등에 따라 짧게는 10개월, 길게는 18개월이 걸린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지난 10일 성명을 내고 "심사 기간에 불화가 일어나면 심사에 불이익이 생길까 봐 남편의 학대를 참았다는 사례가 많다"며 "남편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집에서 나왔다가 귀화가 어그러진 사연도 들었다"고 전했다.

결혼 귀화 신청자는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이수해 귀화 심사 기간을 6개월 단축할 수 있다. 하지만 이주여성인권센터는 "사회통합프로그램은 최대 485시간 프로그램을 들어야 해 생계를 책임지지 않은 사람만 수강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결혼이주여성이 이혼한 뒤 국내 체류를 원하면 현실적으로는 재판 이혼을해야 하는 점도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된다.

이주민센터 친구 이진혜 상근변호사는 최근 폭력피해 이주여성 심포지엄에서 외국인 배우자는 '국내에서 한국인과 정상적인 혼인생활 중 자신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이혼한 사람'임을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입증하는 경우에만 체류자격 연장을 허가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매뉴얼 상으로는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 귀책사유 없음을 입증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재판 이혼을 통해 법원에서 이혼 사유가 상대방에게 있음을 입증한 경우가 아니라면 체류자격을 연장받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전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다문화인구동태 통계를 보면 다문화 가정의 이혼에서 재판 이혼이 42.1%로 한국인 간의 재판 이혼(19.5%)보다 두 배 이상 많은 현상은 이런 맥락에서다.

이진혜 상근변호사는 "결혼이주여성의 체류자격 연장, 변경, 취소 처분은 국가가 상정하는 정상 가족의 이데올로기와 가부장제에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재판 이혼을 통해 이혼 사유가 상대방에게 있음을 입증해야하는 상황은 조정전치주의를 택하고 있는 대한민국 가정법원 취지와도 역행한다"고 꼬집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강혜숙 공동대표는 같은 심포지엄에서 "재판에서 명백하게 한국인 배우자의 귀책 사유로 이혼한다고 판시한 경우에도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체류를 허락하지 않거나 부부 관계 개선을 위해 별거 중인 상태에서 체류 연장을 해주지 않는 사례도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10일 대법원은 이혼한 결혼이주여성이 결혼이민 체류자격을 연장하려면 이혼의 주된 책임이 한국인 배우자에게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판결을 내놨다.

이번 판결은 결혼이주여성이 이혼 책임이 '전적으로' 한국인 배우자에게있다는 점을 입증해야만 체류자격을 연장할 수 있다고 본 기존 판결에 제동을걸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sujin5@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7/13 10:00 송고


기사 원문 : https://www.yna.co.kr/view/AKR20190712126000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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