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이곳은 온세상 둥근 지구...배움터 교육지원사업

* 삼성꿈장학재단 웹진 56호







“사실은 조금 외로워, 텅 빈 방에서 시계 소리만 들려~♪♬” 겨울왕국의 안나처럼 지금은 나도 무대 위의 주인공. 일곱 살부터 열세 살까지 피부색도, 태어난 곳도 다른 아이들이 한국어로 또박또박 같은 노래를 부르고 같은 춤을 춘다. 서로 다른 목소리를 한마음으로 모으면 오히려 더 풍부한 화음을 이룬다. 낯선 말로 가득한 텔레비전 소리만 가득한 빈방에서 혼자 남겨져 있던 아이들은 이제 이곳 ‘더큰이웃아시아’에서 함께 노래하며 성큼 성장해 나간다. 배움터에서 노래를 통해 배워나가는 한국어도 이젠 낯설지 않다. “나와 함께 눈사람 만들까?~♪♬”라고 노래하면 이곳엔 대답해 줄 친구와 선생님으로 가득하다.





함께 전체를 이뤄가는 기쁨, 평화의 이야기를 배워요


앞으로, 앞으로 계속 걸어가 볼까? 둥근 지구를 자꾸 걸어가다 보면 만나게 될 친구들이 여기 먼저 도착해 있다.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 지구 곳곳의 다양한 국가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부모님을 따라 바다를 건너와 이곳 배움터에서 한국어와 뮤지컬을 배운다. 스무 명 아이들로도 꽉 찬 교실의 맨 앞에 서서 예쁜 합창 선생님이 아이들을 이끈다. “자, 이 부분에서 다 같이 멋있게 뛰어가야지!” 뮤지컬을 연습하는 아이들은 선생님의 반주에 따라, 조화로운 전체를 만들어간다. 선생님은 한글을 못 읽는 아이들을 위해 악보 대신 귀로 듣고 음을 기억하게 하고, 칠판에 가사를 크게 쓴다. 코다이 기호라는 손 기호를 써서 도레미파솔라시도 계이름을 알려주기 때문에 아이들은 선생님의 손만 보고도 쉽게 음을 알 수 있다. 대학원에서 지휘를 전공한 뒤 지금은 기간제 음악 교사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순영 선생님은 지난해부터 아이들과 함께 합창 수업을 하고 있다. 작년엔 평일 자원봉사로 수업을 시작했지만, 올핸 주말 배움터 정규수업으로 자리잡으면서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오히려 제가 배우는 게 많아요. 처음엔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도 향유할 수 있는 문화적 자산을 ‘베푼다’는 생각을 갖고 시작했지만, 막상 수업을 해보니 같이 더불어 행복해지는 법을 ‘배운다’는 걸 느끼게 됐죠.”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같이 무언가를 이뤄나가는 법을 배워나가며 자존감이라는 마음의 씨앗을 심는다. 그리고 노래로 한국어를 익히고, 교과와 교양, 역사를 배워나가면서 그 씨앗을 싹 틔운다. 언젠가 이 아이들이 성장하면 더 큰 이웃 속에서 나눔과 이해의 삶을 살고, 조화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나갈 또 다른 씨앗이 될 것이라는 게 바로 배움터 ‘더큰이웃아시아’의 희망이다.





세계지도를 펼쳐 놓은 것 같은 화성, 세계 시민이 되는 배움터


사단법인 더큰이웃아시아는 2011년 4월 ‘아시아다문화소통센터’라는 비영리 단체로 문을 연 뒤, 올해 초 터를 넓혀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됐다. 또한 기존의 한국어 교육과 다문화 아동·청소년 교육을 넘어 더 다양한 다문화 이주민 지원 사업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주민 가족이 한국에서 잘 적응해나가기 위해 다방면으로 돕다 보니 자연스럽게 넓어진 것. 제조업 공장이 많은 화성은 전체 인구의 7.6%가 이주민으로 공식 집계만 4만 6천 명이 넘고, 이주민의 국적이 매우 다양해 ‘전 세계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이주민이 늘면서 가장 중요해진 문제는 바로 한국어 교육이다. 수강반을 지속적으로 늘렸지만 한국어를 공부하고자 하는 성인 이주민들의 발길이 점점 늘어나 특히 주말반 수업에는 책상이 부족할 정도다. 부모의 한국어 교육 열기가 뜨거워질수록 함께 이 배움터에 와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참여도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배움터에서 가장 관심을 쏟는 대상은 부모를 따라 중도 입국한 청소년들이다. 중도 입국 아동·청소년들은 한국의 정규 교육 시스템에 자연스럽게 흡수되지 못하고 겉도는 경우가 적지 않는데, 그 사이에서 충격을 흡수해줄 보완 교육 기관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가장 큰 문제는 낯선 공간에 갑자기 혼자 남겨진 아이들이 가장 예민한 시기에 자존감을 잃는다는 것. 이 아이들이 진짜 ‘우리’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도우려면, ‘우리=한국인’이라는 인식을 ‘우리=세계 시민’으로 넓혀야 한다는 것이 더큰이웃아시아 이용근 선생님의 생각이다.



“배움터에서는 다문화 이주민이 스스로 선생님이 되어 커리큘럼을 짜고 각자의 나라를 소개하는 수업을 해요.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고 사회 구성원의 일부가 되어 공동체를 만드는 데 동참하는 거죠.” 이주민이 교사로 활약하는 세계시민교육은 그런 배경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선주민과 이주민 12명으로 구성된 ‘세계시민교육 강사단 모임’에서 몇 달에 걸쳐 수업 프로그램을 만든 뒤 아이들에게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 음식에 대한 강의를 해나간다. 강연자의 자녀나 같은 국가에서 이주해온 이웃의 자녀들은 그 모습에서 큰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내용을 살짝 엿보면, 우즈베키스탄 강의에서 ‘실크로드’의 찬란한 역사를 설명하고, 일본 강의에서는 ‘애니메이션’으로 동기를 유발하는 식이다. 또 둥근 지구에는 중심이나 주변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생각을 심어주고자 ‘세계지도 거꾸로 보기’도 가르친다. 모두가 중심이고 모두가 존중받아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 그리고 ‘평화’의 궁극적인 의미를 알려주는 것이 바로 세계시민교육의 목적이다. 올해 10개 지역아동센터에서 동시에 진행된 세계시민교육에 참여한 아이들이 오는 10월 14일 ‘글로컬 리더로 성장하는 청소년 세계문화축제’에 직접 참여한다. 행사의 관람자에서 주인공으로, 능동적인 세계시민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어차피 삶은 낯선 세계를 탐험하는 여행이야, 무엇이건 용감하게 도전하렴


어쩌면 이 아이들은 누구보다 먼저 세계 일주 여행을 시작한 여행자다. 단지 낯선 세계에 적응하는 일을 조금 일찍 시작했을 뿐이다. 삶의 여정은 결국 모르는 길은 서로 물어가며 힘을 합쳐 길을 찾아 나가는 것이 아닐까. 이 아름다운 여행자들을 위하여 배움터에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신기한 풍경들이 많다. 아이들이 늘 기대고 바라보는 벽면은 알록달록 책들이 가득 꽂혀 있는데, 이곳의 숨은 명소이기도 하다. 이른바 ‘이삭 도서관’이다. 벽면을 따라 이어지는 책들은 흡사 세계지도처럼 중국어, 몽골어, 방글라데시어와 같은 낯선 언어의 동화책도 가득해 여기 서 있기만 해도 이미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셈. 이곳에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책이 만 권이 넘는다. 이곳을 참새 방앗간처럼 드나드는 아이들은 매일 조금씩 스스로 빛나는 어엿한 인격체로, 세계시민으로 성장해나간다.



배움터에서는 ‘교실밖 생생여행교실’이라는 여행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낯선 세계에 어느 날 툭 떨어졌을 때, 그곳에 적응해야 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답답하고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성장’이란 결국 낯선 영역에 적응해나가면서 스스로 마음과 생각을 키워나가는 연장선으로 봤을 때, 여행지에서 부딪혀가며 배우는 언어는 말 그대로 서바이벌(생존) 언어가 될 수 있다. 그 앞에서 아이들을 독려하고 이끌어가는 정일권 선생님은 언제나 아이들 편이 되어주는 든든한 ‘여행 기획자’다. “처음엔 아이들이 저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어떤 말을 해도 잘 듣지 않았는데, 여행을 해 나가면서 말수도 늘고 학교생활에 적응해나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뭉클한 기분이 들어요. 세상을 여는 용기를 스스로 깨닫고 성장하는 모습에 저 역시 행복해지고, 함께 성장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은 여행지에서 겪은 기록을 남기고 동영상이나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 스스로의 성장을 여러 사람에게 알린다. 페이스북의 ‘Asia 생생여행동아리’ 공간은 아이들이 이 세계에 적응해 최초로 꽂은 깃발이기도 하다. 여행들을 통해 아이들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꿈을 만들어간다. 거울처럼 마주 보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렇게 쑥쑥 성장해나간다. 어떤 세상에 던져 놓아도 적응할 수 있는 베테랑 여행자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지역교육과의 밀접한 네트워킹, 아이들의 적응을 돕기 위한 아름다운 교육 공동체



“한 아이를 기르기 위해서는 부모님이나 학교 어느 한쪽의 힘만으로는 부족해요. 온 우주의 관심과 애정으로 한 송이의 꽃을 피운다는 말처럼 하나하나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아이들을 놓치지 않고 키워가는 것이 교육자로서 또 어른으로서 저희가 해야 할 일이죠.” 이용근 선생님은 평소 이주민 자녀를 위한 한국어 교육이나 적응 교육과 관련하여 축적된 기반이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로 다가온다. 하지만 배움터 입장에서 직원은 세 사람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사업을 자원봉사자의 정성을 모아 운영하고 있는 만큼, 아이들 모두를 일일이 보듬을 수가 없어서 안타까운 실정이다. 품어줄 여력을 넓혀가기 위해 고민을 거듭한 끝에 배움터가 찾은 방법은 머리를 맞대고 여러 사람의 힘을 최대한 모으는 것. 그래서 주변의 모든 교육 자원과 연계하고자 백방으로 뛰었다. 같은 화성 지역의 병점중학교는 다문화예비학교로, 중도 입국 자녀들이 학적을 갖추기 위한 서류가 부족하거나 졸업증서 같은 서류가 없어 학적을 증명하지 못할 때, 일정한 수업을 들으면 학적을 인정해주며 최소한의 정규교육의 틀이 되는 든든한 곳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오전에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배움터로 와서 다양한 교육을 받으며, 공교육 시스템에 서서히 적응해 나가면서 동시에 공교육 시스템이 해결할 수 없는 틈을 촘촘히 메워간다. 이러한 조합적 프로그램은 대안학교인 그물코학교와 근처의 10여 곳의 지역아동센터와의 밀접한 연계로도 이루어진다. 이들 기관과의 연계는 안정적인 교사 풀을 확보하고 배움터의 범위와 교육을 확장해서 혹여 놓칠 수 있는 아이들을 더 넓게 품을 수 있도록 안전한 테두리를 만들어 상부상조할 수 있는 교육 공동체로서의 ‘우리’, 한 덩어리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교사풀이 안정되면서 교사 지원 워크숍 또한 활성화되었는데, 올해 3개월 동안 9회기에 걸쳐 교사 교육이 있었다. 교사 교육의 방식은 질문으로 시작하는데, 먼저 한 사람이 한 말에 대해 상대방에게 “너는 어떻게 들었니?”하고 이해한 의미를 이야기하게 한다. 하지만 이해한 뜻은 맨 처음 이야기를 했던 의도와 전혀 다르다. 어떤 ‘다름’과 ‘차이’를 만드는 벽이 있다는 걸 스스로 인식하게 되는 과정이다. 이후 치열하게 토론을 거듭하며 누구도 소외받지 않는 합의 지점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이어진다. 선생님들에겐 처음 만져본 하늘처럼 굉장히 신선하고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한다. 이 수업은 내년과 내후년으로 이어져 차츰 학생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으로 확장해 학생들이 스스로 갈등을 인식하고 해소하는 능력을 기르도록 운영해나갈 계획이다. 선생님의 성장이 결국 아이들의 성장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꿈을 나누는 가족, 변화하고 성장해 나가는 소중한 인연들


이곳에서는 모두가 가족이 된다. 국경을 초월해 마음을 모을 수 있다는 건 사실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더불어 살아가는 존중과 배려의 문화를 배워나가는 터전. 밥 한 끼도 나눠먹는 ‘식구’로 누구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다.





식구란 그런 것 아닐까. 세상에 부대끼고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돌아 누워 성을 내도, ‘밥 먹고 자’ 하고 말 걸어 주는 일상을 나누는 존재. 고향을 떠나 국경을 넘어 와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린 이주민들에게 ‘한 식구’로 그들이 꾸는 작은 꿈을 지지해주고 공감해주는 곳이 꼭 필요했을 것이다. 이들이 하는 일이 어쩌면 작은 일일지도 모르지만 이 작은 일들이 모여 소외되었던 누군가를 살게 하고 아이들의 꿈을 키워준다. ‘살리는 일’이어서 ‘살림’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하는데, 이곳 살림은 처음부터 끝까지 콩 한 쪽도 나눠 먹는 식구들을 챙기는 것처럼 다사롭다. 아이들은 이렇게 따뜻하게 자라야 하지 않을까. 이곳에서 아이들은 안심하고 자신의 꿈을 꾼다. 그 아이들을 돕는 마음, 선한 우연이 겹쳐 교실 한 칸에서 또 다른 한 칸씩 그렇게 늘어나 여기까지 왔다. 어쩌면 이곳에서 기적은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무엇인가 해보고 싶어도 자금이나 시설을 운영해 나가는 현실적인 한계에 봉착했을 때 가능성을 열어주는 지지자들이 있었다. 선뜻 손을 내밀어준 삼성꿈장학재단의 도움도,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내어 주는 자원봉사자들도, 더 큰 이웃으로 평화롭게 이곳에 모여 하나의 멋진 ‘우리’를 만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점점 더 커진 ‘우리’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세상을 밝힐 수 있을 날을 기대해본다.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