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문화원 '문화의뜰' 통권 85호 원고]
빠르게 늘고 있는 이주배경청소년
이 용 근 (사단법인 더큰이웃아시아 상임이사)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이주민’(migrants)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는 이주민이 늘어나는 속도가 전 세계에서 1위다. 10년 사이에 무려 3배가 넘게 증가했다. 이 속도도 엄청난데, 이주민 자녀들이 늘어나는 속도는 그보다 2배 더 빠르다. 즉, 10년이면 6배가 늘어나는 식이다. 그 유형도 무척 다양해지고 있다. 사회적인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이주민 자녀들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게 현실이다.
○ ‘이주배경청소년’을 아시나요?
「청소년복지지원법」 제18조를 보면 ‘이주배경청소년’이 정의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낯선 말이다. 이 법에 따르면, 다음에 해당하는 청소년이 이주배경청소년이다. 1. 「다문화가족지원법」 제2조제1호에 따른 다문화가족의 청소년 2. 그 밖에 국내로 이주하여 사회 적응 및 학업 수행에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부르는 ‘다문화 청소년’은 대한민국 국적자와 외국 국적자 사이에 국제결혼으로 이루어진 가족의 자녀로서 ‘국제결혼가정 자녀’를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 사회에서 훨씬 다양한 유형의 이주배경청소년들이 있다. 중도입국 청소년, 외국인가정 자녀, 탈북청소년, 제3국 출생 북한이탈주민 자녀 등이다.
‘중도입국 청소년’은 주로 결혼이민자가 한국인 배우자와 재혼하여 본국의 자녀를 데려온 경우가 많고, 국제결혼가정의 자녀 중 외국인 부모의 본국에서 성장하다 청소년기에 재입국한 청소년도 포함되어 있다. 즉, 외국에서 태어나 자란 후 초·중·고 학령기에 한국으로 이주해왔기에 학교나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언어소통 지원 등 많은 사회적인 지원이 필요한 청소년들이다.
‘외국인가정 자녀’는 주로 일자리를 위해 한국으로 이주해온 이주노동자들의 자녀로서 부부 모두가 외국인인 가정의 청소년을 말한다. 고용허가제를 실시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이주노동자에 대해 사실상 가족 동반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합법적 체류 신분의 외국인가정 자녀들이 많지 않았으나, 요즘은 가족 동반이 가능한 전문 취업 비자로 변경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외국인가정 자녀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탈북청소년’은 북한이탈주민 중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집단을 말하며, 북한이탈주민이 탈북 후 제3국(주로 중국)에서 출생한 자녀는 ‘제3국 출생 북한이탈주민 자녀’라고 보면 된다. 이 외에도 ‘난민’, ‘미등록 아동’ 등 다양한 이주배경을 가진 청소년들이 있어, 이주배경청소년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와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 이주배경청소년에 대한 통계 제각각
이주배경청소년의 유형은 갈수록 다양해지는데 반해 이들을 통합적으로 조사하는 통계조차 없이 각 부처별로 필요한 현황만 제각기 분류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실제 이주배경청소년이 얼마나 될지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이런 상태에서 실효성 있는 정책이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나마 이주민의 현황에 가장 가까운 통계가 행정안전부의 ‘지방자치단체 외국인주민 현황’ 통계이다. ‘외국인주민’은 대한민국에 90일 이상 장기체류하는 등록외국인, 한국국적 취득자(혼인귀화자, 기타사유 국적취득자), 허가받은 체류기간을 초과한 미등록체류자를 모두 포함한다. 그리고 국내에서 출생해서 국경을 넘지 않고 계속 한국에만 거주했어도 외국인주민의 자녀까지 ‘외국인주민’의 통계에 포함하고 있다. 이주민 자녀에 대해서는 특별한 정책이 필요할 수도 있기에 그 규모를 국가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행정안전부가 2018년 1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외국인주민 자녀(만18세 이하)는 222,455명으로 전체 외국인주민수(1,861,084명)에서 11.9%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연령별로 살펴보면,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큰 폭으로 늘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2000년 이후 급증했던 국제결혼의 결과로 보여지며, 앞으로 학령기 연령층의 증가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즉, 초ㆍ중ㆍ고등학교 모두 각각 매 4년마다 학생수가 2배로 증가하는 추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 사회적 손길이 절실한 중도입국 청소년
중도입국 청소년의 규모는 현재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정부 부처별로 중도입국 청소년을 분류하는 방법이 서로 다르고, 따라서 통계수치도 제각각이다. 법무부 통계에서는 만 18세 이하 중도입국자녀를 9,892명으로 집계했지만, 교육부 통계에서는 초ㆍ중ㆍ고등학교에 다니는 중도입국 학생만도 8,320명으로 조사해 발표했다. 그러나 중도입국 청소년 중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경우가 30% 넘는다는 연구결과를 감안하고, 외국인가정 자녀나 외국국적동포 자녀 중 중도입국 청소년도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중도입국 청소년 수는 3만명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실제로 여성가족부의 조사(2015년 전국다문화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성장 자녀가 60.8%(50,165명)이고, 외국성장 및 거주 경험을 가진 자녀, 즉 중도입국 청소년이 39.2%(32,311명)로 추산되었다. 특히 중도입국 청소년(외국성장 및 거주 경험을 가진 자녀)은 2012년에 추정된 17,000명에 비해 90%(15,330명) 급증하였다. 중도입국 청소년이 3만명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이 조사를 통해서도 합리적으로 추정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외국에서 출생하여 성장기에 한국 사회에 이주해 온 중도입국 청소년은 한국어 능력이나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가 훨씬 어려운 상태다. 실제 중도입국 청소년의 취학률(학교 다니는 비율)이 70%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교육 기회에서의 소외가 취업에서의 소외로 이어져 결국 사회에서 주변화되는 신분구조가 굳어질 우려가 있다.
심리·정서적으로도 중도입국 청소년들은 불안한 상황에 놓여있다. 청소년기에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이주해서 살아갈 경우 외상과 같은 큰 사고나 공포를 경험한 후에 나타나는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언어와 문화가 전혀 다른 세계에, 정서적 지지기반이 없거나 취약한 곳에 홀로 놓여지는데서 오는 공포감이 상당하리라.
게다가 부모의 재혼 후 나중에 중도입국하는 경우, 청소년기 짧은 시기에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는 청소년들의 심리ㆍ정서적 측면까지 고려해 세심한 상담과 지지가 절실한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가 함께 중도입국 청소년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가정 자녀
고령화, 저출산율, 노동력부족 등 인구구조의 변화로 우리나라도 이제 이민정책은 피할 수 없는 국가정책이 되었다. 이로 인해 정부에서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선별 이민을 본격 추진해서 한국에서 계속 살 수 있는 전문 비자로 변경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지금까지 시한부 체류를 허용하던 고용허가제 비전문 취업 비자(E-9/H-2)의 이주노동자들이 보다 장기적인 정주를 허용하는 전문적인 취업 비자(E-7/F-2/F-4)로 변경하게 되고, 이들은 가족을 초청할 수 있어서 요즘 외국인가정 자녀들 또한 빠르게 늘고 있다.
교육부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과 외국인간 국제결혼 다문화가정 자녀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6년 사이에 2.4배 증가한 반면, 부모가 모두 외국인인 외국인가정 자녀는 6년만에 6배나 증가하였다.
부모 중 한명이 한국인이고 태어날 때부터 한국어를 생활언어로 쓰는 환경에서 자라는 국제결혼 다문화가정과 달리 부모 모두 외국인인 외국인가정 자녀는 집안의 일상 생활언어가 부모의 모국어인 환경에서 자라나기에 훨씬 더 많은 사회적인 돌봄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국적자 중심으로 만들어진 ‘다문화가족지원법’의 지원 대상에서 이들 외국인가정과 외국인가정 자녀들은 빠져있다. 전국 모든 지방자치단체에 설립되어 있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이들은 한국어교육이나 상담 등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또한 국적자만 지원하는 한국의 보육지원시스템의 혜택에서도 외국인가정의 영유아 자녀들은 벗어나 있다. 한달에 30~40만원, 두명이면 80만원을 부담하면서 한국에서 자녀를 키울 수 없어서 본국의 조부모께 보냈다가 학령기에 다시 데려오는 경우도 상당하다. 중도입국 청소년의 험난한 길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들 외국인 가정의 상당수는 어려운 경쟁과 자기관리를 통해 전문 비자로 변경한 이주노동자들이기에 대부분 한국에 계속 살기를 원한다. 결국 몇 년 뒤에는 영주권이나 국적을 취득해서 한국사회 구성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국적을 가지지 않았다고 미래에 국민이 될 외국인가정 자녀들을 보육과 교육의 사각지대에 방치해서는 안된다.
어떤 정책이든지 시기가 있다. 지금 시기에 필요한 정책을 펼치지 않는다면, 미래에 그보다 훨씬 더 큰 사회적 비용을 들여도 정책 효과를 거둘 수 없게 될 것이다. 외국인가정 자녀들에 대한 지원이야말로 바로 지금,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문화의뜰 원고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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