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나은미래] "나쁜 사장보다 나쁜 제도가 문제… 이주노동자도 똑같은 권리 누려야"

장지훈 더나은미래 기자

입력 2019.10.22 03:01




지난 8일 서울 은평구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만난 우다야 라이 위원장의 휴대전화는 2시간 남짓한 인터뷰 동안 끊임없이 울렸다. 전남 목포, 서울 동대문구, 경기 평택 등 전국 각지 이주노동자가 도움을 청했다.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우리의 인권까지 싼값에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지난 15일 서울 은평구에 있는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우다야 라이(51) 위원장이 말했다. 네팔 출신으로 1998년 한국 땅을 처음 밟은 그는 첫 직장인 봉제 공장에서 동료 직원에게 구타당했다. 금속 공장, 가구 공장으로 옮겨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폭행과 폭언, 장시간 노동과 임금 체불이 일상이었다. 한국인과 비슷한 외모 때문에 친근하게 말 붙이던 사람들도 "네팔에서 왔다"고 하면 욕을 뱉었다.


그는 2009년부터 이주노조에서 활동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있다. 2014년에는 5대 위원장이 됐다. 2005년 설립된 이주노조는 10년간 법외노조로 머물다 2015년에야 합법 노조가 됐다. 고용노동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포함됐다'는 이유로 설립 신고 필증을 내주지 않았으나, 대법원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노조법이 규정하는 근로자 범위에 포함되고 자유롭게 노조를 만들거나 가입할 수 있다"며 이주노조 손을 들어줬다.


"이주노동자들과 상담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내가 운이 좋지 않아서 나쁜 사장을 만나 고생한다'입니다. 처음에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나쁜 사람이 너무 많은 게 문제라고요. 그게 본질이 아니었어요. 고용 허가제라는 이름의 나쁜 제도가 문제였죠. 우리는 '나쁜 사장'이 아니라 '나쁜 제도'를 없애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고용 허가제는 고용노동부가 이주노동자의 체계적 관리·파견을 위해 2004년 도입했다. 라이 위원장은 "고용 허가제에는 이주노동자를 옥죄는 독소 조항이 너무나 많다"고 지적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사업장 이동 자유의 제한'이다. "이주노동자는 사업주가 동의해주지 않으면 일터를 바꿀 수가 없어요. 직장에서 폭행당하거나,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일이 너무 힘들어서 쓰러질 것 같아도 사업주가 '안 된다'고 하면 끝이에요. 국제노동기구(ILO)는 직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대한민국 헌법에도 직업 선택의 자유가 명시돼 있지만, 이주노동자는 예외예요."


라이 위원장은 "사업장 이동 제한 조항 때문에 사업주가 이주노동자의 노동 환경 개선이나 인권 보호를 게을리하게 된다"고 했다. "언제든 노동자가 일터를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사업주들은 달라질 겁니다. 안전에 신경 쓰고, 처우를 개선하고, 인간으로서 권리도 지켜주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어요."

라이 위원장이 들려준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은 참담했다. 태국에서 일하러 온 한 청년은 기침과 고열 때문에 사업주에게 휴가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증상을 계속 방치하다 폐렴으로 커지는 바람에 병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사업장 변경을 허락해주는 대가로 수백만원을 요구하는 사업주도 있다. "어제(14일)도 부산의 한 금속 공장에서 23세 네팔 노동자가 금속 더미에 깔려 사망했습니다. 적재물 고정 조치를 제대로 안 해 놔서 사고를 당한 거죠."


이주노동자들의 요구는 단순하다. 노동자에게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주는 '노동 허가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라이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일터 선택의 자유를 주면 한국인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 이주노동자가 할 수 있는 업종과 업태가 명확하게 구분돼 있기 때문에 문제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행 제도에서 이주노동자는 ▲근로자 300인 미만 또는 자본금 80억원 이하 '제조업' ▲건설업 ▲건설 폐기물 처리업 ▲어업 ▲농축산업 등에서만 일할 수 있다. 라이 위원장은 "경남 함안 같은 곳은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농축산업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얘기까지 나온다"며 "실제로 관리 당국도 이런 지역은 단속도 잘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라이 위원장은 지난달 24일 경남 김해에서 단속반을 피해 달아나다 사망한 29세 태국 이주노동자 이야기를 듣고, 1년 전 비슷한 사고로 숨진 미얀마 청년이 떠올랐다고 했다. 지난해 9월 8일 26세였던 탄저테이씨는 단속을 피하려다 7.5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우리는 법이 모든 노동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의 노동이 가치가 있기 때문에 국경을 열어준 것이니까요. 그럼 이주노동자도 이 사회에서 평등과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최소한은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싸울 일도 아니에요. 이주노동자가 안전하게, 대우받으며 일하는 사회가 한국인에게도 좋은 사회 아닌가요?"



장지훈 더나은미래 기자

기사 원문 :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21/2019102101460.html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 증가:

위험의 ‘이주’화 낳는 고용허가제

김승주 | 2019-10-16 |


*이 기사를 읽기 전에 “차별과 억압, 죽음으로 얼룩진 15년: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 폐지하라”를 읽으시오.


한국에 온 지 2주 만에 목숨을 잃은 네팔 이주노동자의 사고 현장 ⓒ제공 이주노조



이주노동자들의 소리 없는 죽음이 늘고 있다.


공식 산재 통계에 따르면, 산재로 사망한 이주노동자 수가 2016년 71명에서 2018년 136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올해 1~6월 사이 발생한 산재 사망자 10명 중 1명은 이주노동자였다. 사망에 이르지 않은 질병과 부상까지 합하면 한 해에 이주노동자 산재는 7300여 건에 달한다.


이조차 극히 일부분에 불과할 것이다. 여러 보고서들은 산재의 실제 규모가 정부 통계의 13~30배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한다(2008년 이진석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등). 이주노동자의 경우 산재 은폐가 훨씬 더 많아 그 숫자는 더 커질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산재 발생률은 한국인의 6배가 넘는다.


언론을 통해서도 이주노동자의 사망 소식이 많이 들려왔다. 10월 12일에는 한국에 들어와 일한 지 2주밖에 안 된 23세 네팔 이주노동자가 철판에 깔려 사망했다. 7월 31일 목동 빗물 저류시설 참사에서 미얀마 노동자가, 9월 10일 영덕에서는 오징어 가공 공장에서 베트남 노동자 1명과 태국 노동자 3명이 질식사했다.



죽음의 족쇄


8월 14일 속초 건설 현장에서는 승강기 추락으로 한국인 노동자 4명과 이주노동자 2명이 크게 다쳤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은 즉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는 대신 몸을 숨겨야 했다. 미등록 상태였기 때문에 병원에 가면 신상이 드러나 강체 추방될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


미등록 노동자들은 심각한 산재를 당해도 침묵을 강요받는다. 법적으로 산재 신청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현실의 벽은 높고도 높다. 애당초 “산재”가 뭔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영세한 작업장의 경우 미납한 산재보험금을 몰아서 내야 한다거나, 미등록 노동자를 고용한 데 대한 벌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사장들은 절대 산재 신고를 안 하려 한다. 사장들은 일하다 다친 이주노동자에게 “불법 체류자로 신고할까?” 하고 협박하고, 산재 신청은커녕 치료비조차 월급에서 공제해 버리기 일쑤다.


경찰을 불러 “불법체류자니 데려가라”고 한 사례도 있다. 싼 값에 힘들고 위험한 일을 시키다가 다치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이주노동자를 일회용품처럼 버리는 것이다.


고용허가제에 등록된 노동자들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노조로 조직돼 있지 않으면, 언어가 서툰 개별 이주노동자가 사장과 싸우고 법적으로 복잡한 절차를 거쳐서 산재를 입증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후 일자리를 부지하기도 어렵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내 손가락을 잘라간 저 기계가 무섭다. 제발 다른 곳으로 보내 달라”고 사정해도 사장이 허락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한다. 2017년 한 네팔 노동자는 병을 치료하러 고국에 다녀오게 해 달라는 부탁을 사장이 거부하자 좌절한 끝에 자살을 택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한국에 들어왔다가 장애를 얻거나 시체가 돼 고향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있다.



기사 원문 : https://wspaper.org/article/22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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